맑고 조용한 겨울날 오후
따스한 양지쪽에 나와 손톱을 깎습니다
슬며시 다가온 아내가 손을 내밉니다
손톱을 깎아 달라는 말은 못하고
그냥 손을 내밀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겨우내 내 손톱만 열심히 잘라냈지
아내의 손을 들여다본 적이 없습니다
손곱도 없는데 휴지로 닦아내고 내민
가녀린 손가락마다
손톱이 제법 자랐습니다
손톱깎이의 날카로운 양날이 내는 금속성
똑, 똑! 소리와 함께 손톱이 잘려나갑니다
함께 산 지 마흔다섯 해
처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손톱을 잘라줍니다
파르르 떠는 여린 손가락
씀벅씀벅,
눈시울 자꾸만 뜨거워집니다.
홍해리 시인의 <손톱깎기-치매행·5>
시인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며
이 시를 썼다고 해요.
'왜 아내가 건강했을 땐
손톱 한번 깎아주지 못했을까...’ 싶어서
마음이 아파옵니다.
우리는 내 남편, 내 아내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살고 있나요?
어쩌면 서로가 신경 쓰지 못해서
서로의 손톱, 말투, 마음이...
가시처럼 날카로워진 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