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착한 고깃집에서 먹는 찌개를 좋아합니다
숯불 위에 올린 양은 냄비
얼큰한 국물에 듬성듬성 김치를 넣고 끓여 먹는 목살
시래기에 매콤한 양념을 넣고 졸이는 고등어찌개
냉이 달래가 품은 햇봄을 가득 넣은 된장찌개
식당을 두리번거리는 눈에는 네모난 메뉴판만 보입니다
국물이 있는 요리를 골라 먹는 건 나만의 식견입니다
혀 밑에 똬리를 튼 미각의 샘
손끝으로 차린 밥상 위에는
종잇장에 적어놓은 기밀문서가 조금씩 벗겨지기도 합니다
부대끼며 먹는 말은 진공 포장이 되어 있고
명치끝에 쌓인 응어리는 급랭을 시킵니다
삼킬 수 없어 역류되기도 한 재료들을 모아
천천히 녹입니다
유통 기간이 없는 삶의 찌개에 대파를 송송 뿌려 줍니다
적당한 불에 은근히 졸여야 인생도 제 맛이 납니다
신춘희 시인의 <찌개>
인생은
투박한 그릇에
있는 재료 대강 썰어 넣어도 맛이 나는,
얼큰한 찌개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린 늘
얼마의 돈, 높은 지위 같은
대단한 재료들을 찾아 헤매지만
소박하지만...
내가 가진 재료들, 듬뿍 넣고 졸여줘도
깊은 맛이 나는 게 인생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