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7 (금) 봄, 본제입납 - 어느 실직자의 편지
저녁스케치
2017.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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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땅을 지펴 온 산에 꽃을 한솥밥 해 놓았는데

빈 숟가락 들고 허공만 자꾸 퍼대고 있는 계절입니다
라고 쓰고 나니 아직 쓰지 않은 행간이 젖는다

벚꽃 잎처럼 쌓이는 이력서

골목을 열 번이나 돌고 올라오는 옥탑방에도
드문드문 봄이 기웃거리는지,
오래 꽃 핀 적 없는 화분 사이
그 가혹한 틈으로 핀 민들레가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봄볕과 일가를 이루고 있다

꽃들이 지고 명함 한 장 손에 쥐는 다음 계절에는 빈 손 말고
작약 한 꾸러미 안고 찾아뵙겠습니다 라는 말은
빈 약속 같아 차마 쓰지 못하고

선자의 눈빛만으로도 당락의 갈피를 읽는 눈치만 무럭무럭 자라
빈한의 담을 넘어간다 라고도 차마 쓰지 못하고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다 그치는 봄날의 사랑 말고

생선 살점 발라 밥숟갈 위에 얹어 주던
오래 지긋한 사랑이 그립다 쓰고
방점을 무수히 찍는다. 연두가 짙고서야

봄이 왔다 갔음을 아는
햇빛만 부유한 이 계절에,

허영숙 시인의 <봄, 본제입납 - 어느 실직자의 편지>


꽃이 만발하는 4월이
어느 옥탑방과 고시원에 청년들에겐
면접 준비나 앞으로 있을 시험준비로 바쁜 달이죠.
한참 예쁘게 피어야할 꽃이면서도
봄다운 봄을 맞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봄엔 눈부신 햇살이 전해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