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완전히 지워버렸다고 자신했던
아픈 기억들 바늘처럼 찔러올 때
무수히 찔리면서 바늘귀에 매인 실오라기 따라가면
보인다 입술 다문 마음의 서랍
허나 지금까지 엎지르고 퍼담은 세월 적지 않아서
손잡이는 귀가 빠지고 깊게 패인 흠집마다 어둠
고여 있을 뿐 쉽게 열리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뻑뻑한 더께 쌓여 있는 걸까
마음의 서랍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에 겨워
나는 어쩔 줄 모른다 거기 뒤죽박죽의 또 한 세상
열면 잊혀진 시절 고스란히 살고 있는지
가늠하는 동안 어디에선가 계속 전화벨이 울려
아무도 수신하지 않는 그리움을 전송하는 소리 적박하다
나야, 외출했나보구나, 그냥
걸어봤어, 사는 게 도무지 강을 건너는 기분이야,
하염없이 되돌아오는 신호음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듯
우두커니 서서 나는 마냥 낯설기만 한
마음의 서랍 끝내 열어보지 못한다
아무래도 외부인 출입금지의 팻말 걸린 문 앞에
서성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는
대낮에도 붉은 등 켜고 앉아 화투패 돌리며
쉬어가라고 가끔 고개 돌려 유혹하는 여자들의 거리에
와 있는 것만 같아 안절부절이다 순정만화처럼
고만고만한 일에 울고 웃던 날들은 이미 강 건너
어디 먼 대양에라도 떠다니는지
오늘 풍랑 심하게 일어 마음의 서랍 기우뚱거리면
멀미 어지러워 나도 쓸쓸해진다 언젠가
뭘 그렇게 감춘 것 많냐고 속 시원히 털어놓으라고
나조차 열어보지 못한 마음의 서랍
우격다짐으로 열어본 사람들 기겁하여 도망치며 혀차던
마음의 서랍은 서럽다
강연호 시인의 <마음의 서랍>
기억을 마음대로 편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안 좋은 기억들은 세월이 가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잊었다고 말하며 묻어두는 것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