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달 걸린 것처럼 누런 런닝구
대야에 양잿물 넣고 연탄불로 푹푹 삶던 런닝구
빨랫줄에 널려서는 펄럭이는 소리도 나지 않던 런닝구
白旗 들고 항복하는 자세로 걸려 있던 런닝구
어린 막내아들이 입으면 그 끝이 무릎에 닿던 런닝구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게를 많이 져서
등판부터 구멍이 숭숭 나 있던 런닝구
너덜너덜 살이 헤지면 쓸쓸해져서 걸레로 질컥거리던 런닝구
얼굴이 거무스름하게 변해서 방다닥에 축 늘어져 눕던 런닝구
마흔일곱 살까지 입은 뒤에 다시는 입지 않는 런닝구
안도현 시인의 <아버지의 런닝구>
처음엔 하얗고 보송했던 아버지의 런닝이
구멍이 숭숭 뚫려 갈 때쯤
마냥 어렸던 나도 철이 들었던 거 같습니다.
빳빳한 교복 옆에 걸린
아버지의 누런 런닝에
가슴 한 켠이 시큰해졌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