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불씨를 건네받았습니다
호두 한 알을 무심코 건네받았습니다
머리가 아플 때 머리를
귀가 아플 때 귀를
마음이 아플 때 마음을 문지르라는
말과 함께요
세상의 모든 화근(火根)은 말이지요
열매 한 톨이지요
그날 이후 자꾸 손이 시렸습니다
얼간이처럼 두 손으로 공손히
씨앗 한 알을 건네받은 적 있습니다
그 씨앗이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고 숲이 되고
저를 응달 깊은 사람으로 만들게 될 줄도 모르고요
권현형 시인의 <화근>
불행이라는 씨앗이
좌절을 양분 삼아 숲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 숲에서 벗어나야 할 차례입니다.
나뭇가지를 꺾고 돌덩이를 치우며
힘을 내 앞으로 가봅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햇살이 내리 쬐는
맑고 푸른 들판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