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3 (금) 소요유(逍遙遊)
저녁스케치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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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상 옆에는 국숫집이 있고 통닭집이 있고
옷가게를 지나면 약방이 나오고 청과물상이 나온다.
내가 십 년을 넘게 오간 장골목이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다, 매일처럼 새로운 볼거리가 나타나니.
십 년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이제야 보고
한 달 전에 안 보이던 것이 오늘에사 보인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달려가서, 더러는
옛날 떠돌던 시골 소읍과 장거리를 서성이기도 한다.
밝은 눈으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흐려진 눈으로 새롭게 찾아내고
젊어서 듣고 만지지 못했던 것들을
어두워진 귀와 둔하고 탁해진 손으로
듣고 만지고, 다시 보는 즐거움에 빠져서.

밝은 눈과 젊은 귀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흐린 눈과 늙은 귀에 비로소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섭섭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라도.

신경림 시인의 <소요유(逍遙遊)>


소요유란 '유유자적 노닐다'라는 뜻이죠.
생각이 자유로워짐을 얘기한 것입니다.
같은 것을 보아도 어제와 다른 점을 보는 건
나이듦의 자유로움과 신기함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