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6 (금) 삶에 대한 감사
저녁스케치
201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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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나에게 영웅의 면모를 주지 않으셨다
그만한 키와 그만한 외모처럼
그만한 겸손을 지니고 살으라고

하늘은 나에게 고귀한 집안을 주지 않으셨다
힘없고 가난한 자의 존엄으로
세계의 약자들을 빛내며 살아가라고

하늘은 나에게 신통력을 주지 않으셨다
상처받고 쓰러지고 깨어지면서
스스로 깨쳐가며 길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도 주지 않으셨다
노동하는 민초들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
최후까지 정진하는 배움의 사람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내 작은 성취마저 허물어 버리셨다
낡은 것을 버리고 나날이 새로와지라고

하늘은 나에게 사람들이 탐낼만한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으셨지만
그 모든 씨앗이 담긴 삶을 다 주셨으니
무력한 사랑 하나 내게 주신
내 삶에 대한 감사를 바칩니다

박노해 시인의 <삶에 대한 감사>


빈손이 무언가로 채워질 때
우리는 삶에 감사를 느낍죠.
애초에 손에 쥔 것들이 많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감사하며 살기 위해
우린 조금 완벽하지 않은 모습으로
태어난 건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