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더라면
지하철을 놓치지 않았더라면
바지에 커피를 쏟지 않았더라면
승강기 문을 급하게 닫지 않았더라면
내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좋아했다면
대화보다 침묵을 좋아했다면
국어사전보다 그림책을 좋아했다면
새벽보다 아침을 더 좋아했다면
무작정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그날 그 시각 거기에 있지 않았다면
너를 마주치지 않았다면
그 말을 끝끝내 꺼내지 않았더라면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닦아 주는 데 익숙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내다보는 데 능숙했다면
만약으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하루하루를 열고 닫지 않았다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햇빛이 들고
바람이 불고
읽다 만 책이 내 옆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만약 내가
어젯밤에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오은 시인의 <만약이라는 약>
누구는 후회해도 소용없다고들 합니다.
물론 그 말도 아주 틀린 말을 아니지만
후회해서 반성할 수 있다면
그건 나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는 약이 되기도 하죠.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반성은
언젠가는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요?
그래서 가끔은 밤새 후회해보는
아픈 시간도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