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양은그릇에 식혜를 내 온다
때 전 지폐처럼 모 난 귀퉁이로
제 한 몸 감추지 않은 그릇을 내 온다
아내의 손등에 흠집이 보인다
작고 고왔던 젊은 날의 섬섬옥수
세월에 파이고 깎여 그릇처럼 낡았다
상처뿐인 가장의 찌그러진 생을 위하여
시간을 도막 치고 청춘으로 간을 맞추던
그 손등 꿈도 사랑도 모르 누운 것이다
식혜 같은 한 생애도 마셔보면 알 수 있다
정말 잘 삭는다는 건 그래 달콤하다는 건
저렇듯 작은 손등에 흠집 하나 얹는다는 것
황성진 시인의 <그릇>
한 집안을 이끈 가장의 생애에도
함께 뒷바라지를 해온 아내의 생애에도
오래 쓴 그릇처럼 세월의 흔적이 묻었습니다.
빛은 바래고 낡았지만
그릇 속에 담긴 삶은
잘 삭은 식혜처럼
그렇게 달콤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