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15 (화) 실업
저녁스케치
2016.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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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 떼와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떼가 역으로
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내내
순환선 열차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가고 싶은 곳들이 많았다 산으로도 가고 강으로도
가고 아버지 산소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기도 했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나 여느 날의 퇴근길처럼
포장마차에 들러 하루분의 끼니를 해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과일 한 봉지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아름다웠다 아내와
아이들의 성적 문제로 조금 실랑이질을 하다가
잠자리에 들어서는 다음날 해야 할 일들로
가슴이 벅차 오히려 잠을 설쳐야 했다

이력서를 쓰기에도 이력이 난 나이
출근길마다 나는 호출기에 메시지를 담는다
'지금 나의 삶은 부재중이오니 희망을
알려주시면 어디로든 곧장 달려가겠습니다'

여림 시인의 <실업>


누군가 실업은
직장을 내어준 대신
시간을 얻은거라고 하죠.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 해보라는 뜻이라고...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나에게도 때가 올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