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일정표에 정색을 하고 붉은색으로 표를 해놓은 일들 말고
가령,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모종대를 손보는 노파처럼
곧 헝클어지고 말 텃밭일망정
흙무더기를 뿌리 쪽으로 끌어다 다독거리는 일
장맛비 잠시 그친 뒤, 비가 오면 다시 어질러질 텐데
젖은 바닥에 붙어 잘 쓸리지도 않는 은행잎을 쓸어담느라 비질을 하는 일
치우고 나면 쌓이고, 치우고 나면 쌓이는 눈에 굽은 허리가 안쓰러워
어르신, 청소부에게 그냥 맡기세요 했더니
멀거니 쳐다보곤 하던 일을 마저 하던 그 고요한 눈빛처럼
별 뜻도 없이 고집스레,
내 눈엔 공연한 일들에 노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 쓸모없는 일들 앞에서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세상에는 값지고 훌륭한 일도 많다지만
손택수 시인의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의미가 있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공연한 일이다 싶어도
내가 해서 행복하다면
그걸로도 충분하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