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 들려
누군가 읽다가 버려 예까지 와버린
헌 시집 한 권을 샀다
정가의 오분의 일도 되지 못한 시집 한 권
왜 그렇게 싸냐고 물으니
요즈음 같은 때 시 같은 걸 누가 읽느냐
한 두어 편 읽다가 버리는 것이지요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헌책방 주인이 오히려 이상하게 날 바라보았다
시내버스 제일 뒷좌석에 앉아
떱뜨름한 가슴을 열어 시집을 펼쳤다
누가 그랬을까?
사랑, 별, 햇살 등이 나오는 시 구절마다에
붉은 볼펜으로 굵은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시집을 처음 펼쳤던 사람에게도
뜨거움이 있었던 것 아니겠는가
그렇구나, 그렇구나
한때의 뜨거움을 가진 자는 이렇게 버릴 줄도 안다
그 동안 어떠한 뜨거움도 없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탕진하며 미적거려 왔던가
문득 나의 사랑과 별과 햇살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그만 달리는 버스에서 내려
잊고 살아왔던 내 사랑과 별과 햇살을 찾아
다시 헌책방을 찾아서 힘차게 내달렸다
구재기 시인의 <헌책방을 찾아서>
하루하루 살다보니
가슴에 뜨거운 것 없이
이만큼 와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