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5 (토) 묵값은 내가 낼게
저녁스케치
20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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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그 묵집에서 그 귀여운 여학생이
묵 그릇에 툭 떨어진 느티나무 잎새 둘을
냠냠냠 씹어보는 양 시늉짓다 말을 했네

저 만약 출세를 해 제 손으로 돈을 벌면
선생님 팔짱 끼고 경포대를 한 바퀴 돈 뒤
겸상해 마주보면서 묵을 먹을 거예요

내 겨우 입을 벌려 아내에게 허락 받고
팔짱 낄 준비 다 갖춘 지 오래인데
그녀는 졸업을 한 뒤 소식을 뚝, 끊고 있네

도대체 그 출세란 게 무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 출세를 아직도 못했나 보네
공연히 가슴이 아프네 부디 빨리 출세하게

그런데 여보게나
경포대를 도는 일에 왜 하필 그 어려운 출세를 꼭 해야 하나
출세를 못해도 돌자 묵값은 내가 낼게

이종문 시인의 <묵값은 내가 낼게>


출세가 뭐고, 명예가 뭐길래
내가 한 약속도 저버리고 사는지...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원하는 걸 이루는 데에는
그저 묵값 정도만 있으면
충분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