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30 (금) 안부
저녁스케치
20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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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한 번 만나자는 말
조만간 한잔하자는 말
믿지 말자 전화를 끊으면서
그것은 내가 한 말이기도 했으므로
약속은 아직 먼 곳에 있고
나는 여전히 동문서답의 헛바퀴를 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일이
어디 약속뿐이랴 뱉은 만큼
못다 한 말들 입속에 바글거리고
만나면 만날수록 결별만 수북수북 쌓인다
그런 게 다 인생이라고 나는 제법
늙어서 흰머리를 툭툭 털면서
발톱을 깎으면서 안경알을 닦으면서
생각하건데, 나는 죄의 신봉자였으니
일기장은 날마다 내게 반성을 촉구했고
지키지 못했으므로 반성은
더 많은 반성을 몰고 왔다
나, 이윽고 죄 많아 빼도 박도 못하겠으니
그대 어디쯤 잘 계시는가 제법 늙었는가
이 꽃이 지기 전에
우리, 폐단처럼 꼭 한잔하자

정병근 시인의 <안부>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두 개인 이유는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는 뜻이라더니
가끔 안 지켜질 약속을 할 때는
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기 위해 두 개라던
우스개소리가 정답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합니다.
해가 가기 전에 안부 묻고 얼굴 좀 보며 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