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 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
이대흠 시인의 <귀가 서럽다>
강물은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지나온 시간도 되돌릴 수 없어서
한해의 끄트머리 즈음 시월이면 문득 서러워지기도 하지만
냇물은 더 큰 강으로 흐르고
강물은 가장 큰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흐르는 시간과 저무는 계절도
우리를 더 크고 넓은 곳으로 데려다 줄거라 생각하며
계절이 가는 아쉬움을 덜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