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다니겠다고
희망의 어두운 그림자는 버리겠다고
아니 희망의 그림자라도 데리고 떠나겠다고
더 이상 오지 않는 지하철은 타지 않겠다고
사직서를 쓴다
이제 꽃들도 그만 피어나겠다고
바람도 그만 불어오겠다고
개와 고양이도 잠들겠다고
아파트도 쓰러지겠다고
해도 다시는 뜨지 않겠다고
다들 사직서를 쓴다
그 어디에도 제출할 데가 없는데도
그 누가 받아주지 않는데도
사직서를 써서 가슴에 품고
오늘도 쓸쓸히 흔들리며 지하철을 타고
밤의 한강을 건너간다
정호승 시인의 <사직서>
모든 사람들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는
결코 내놓을 수 없는 사직서 하나씩이 들어있습니다.
그건 자존심 구겨졌을 때
‘이까짓 직장 언제든 그만두면 그만이지’라고
스스로에게만큼은 호기롭고 싶어서 품고 다니는 슬픈 사직서는 아닌지...
우리 부모님도 그랬고, 우리도 몇십년을...
나만의 호기를 가슴에 품고 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