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연이라는 구두를 신고 다닌다
대량 할인판매하는 구두를 매장에서
그 많기도 많은 구두들 사이를 돌아다니다
나는 눈에 들어온 구두 하나를 골랐다
고르고 나서 들여다보니 그 구두는 우연(Woo yeun)이 만들어 낸 구두였다
그처럼 우연하게 내 발은 지금 그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구두를 신고 다니면서부터는
우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바꿀 수 없는 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다시, 한 켤레의 구두를 내 생에 끌어들이면서 돌이켜보건대
나를 이뤄 놓은 모든 것이란 게
고작 우연이 우연을 불러내며 쌓아진 모래성은 아니었을까
덜 굳어진 만큼 약하게 더러 크게 흔들리는
오늘도 나는 우연이라 새겨진 구두를 신고
때로는 기특하고 때로는 무서운
우연의 발자국을 찍는다
이선영 시인의 <우연>
수많은 구두 중에 하필 이 구두가 눈에 띈 건 우연이지요.
하지만 구두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면서부터
구두와 나의 인연이
더 이상 우연이 아닌 게 되는 것처럼
어떤 일은 우연이 반복돼 운명이 되고,
시간이 흘러서 필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세상의 모든 일은 이렇게 우연과 필연이
맞물려 일어나는 건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