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2 (토) 다정에 감염되다
저녁스케치
202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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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에는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병아리 털처럼 순하고 병아리 눈동자처럼 동그랗습니다 다정은 손을 내밀고 다정을 담은 그릇에는 모서리가 없습니다 다정에는 가시가 많습니다만 너무 많은 가시에서는 가시를 느낄 수 없습니다
언뜻 본 다정은 안경닦이 같습니다 어떤 다정은 너무 커서 다정의 날카로운 발톱이 흙 언덕으로 보입니다 여력이 있다면 한 평의 땅을 사는 것보다는 다정을 구입하는 게 낫습니다 다정은 소모되지 않고 늘릴 수 있으니까요
주의 사항은 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없습니다만 쉽게 흘릴 수 있습니다 다정을 과자 봉지에 넣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면 놀라울 것입니다 한 봉지의 다정을 담아 건네면서 달의 이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나는 다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독은 아니고요 감염된 건 분명합니다
내게는 갓 낳은 달걀 같은 다정이 또 생겼습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병의 씨앗입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다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다정이 싹틀 때가 오면 풀잎들처럼 나란히 앉아 봄을 낭비합시다
이대흠 시인의 <다정에 감염되다>
누구는 다정함이 재능이라고 말하고
또 누구는 다정함은 모든 걸 이기는 무기래요.
그렇듯 다정함이 뭐냐고 묻는다면, 블랙홀이라고 답할래요.
그 속에 빠지면 행복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꽃 피는 봄이 오면
조금 더 다정해지기로 해요.
꽃 무더기 같은 행복이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