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2 (토) 다정에 감염되다
저녁스케치
2024.03.02
조회 416

다정에는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병아리 털처럼 순하고 병아리 눈동자처럼 동그랗습니다 다정은 손을 내밀고 다정을 담은 그릇에는 모서리가 없습니다 다정에는 가시가 많습니다만 너무 많은 가시에서는 가시를 느낄 수 없습니다

언뜻 본 다정은 안경닦이 같습니다 어떤 다정은 너무 커서 다정의 날카로운 발톱이 흙 언덕으로 보입니다 여력이 있다면 한 평의 땅을 사는 것보다는 다정을 구입하는 게 낫습니다 다정은 소모되지 않고 늘릴 수 있으니까요

주의 사항은 있습니다
유통기한은 없습니다만 쉽게 흘릴 수 있습니다 다정을 과자 봉지에 넣는 방법을 개발할 수 있다면 놀라울 것입니다 한 봉지의 다정을 담아 건네면서 달의 이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나는 다정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중독은 아니고요 감염된 건 분명합니다

내게는 갓 낳은 달걀 같은 다정이 또 생겼습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병의 씨앗입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다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의 다정이 싹틀 때가 오면 풀잎들처럼 나란히 앉아 봄을 낭비합시다

이대흠 시인의 <다정에 감염되다>


누구는 다정함이 재능이라고 말하고
또 누구는 다정함은 모든 걸 이기는 무기래요.

그렇듯 다정함이 뭐냐고 묻는다면, 블랙홀이라고 답할래요.
그 속에 빠지면 행복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꽃 피는 봄이 오면
조금 더 다정해지기로 해요.

꽃 무더기 같은 행복이
모두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