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3 (수) 라면을 끓이며
저녁스케치
2016.08.03
조회 557
라면을 끓인다.
천변 평상 위에 걸터앉아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마음을 끓인다
뜨거운 국물에
입을 댄다 기어이
입을 덴다
국물도 없는 팍팍한 세상
냄비 바닥을 뒤지며
해물 건더기나 건지고 있는
볼품없는 나무젓가락도 한때
푸른 잎을 매달고
바람을 휘어잡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돌 틈 사이로
물 흐르듯 여름이 지나가고,
쓰다만 열망이
어딘가 남아 있을 거라고
붉게 물든 개옻나무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마흔 살,
평상 위에 놓인 책이 말하는 것은
아직은 나의 미래에 관한 것
내게 필요한 것은
끝없는 인내와 약간의 운,
그리고 청춘의 부재를 설명해 줄
그럴듯한 알리바이 한 소절

박후기 시인의 <라면을 끓이며>


조금만 방심하면 퍼지고
조금 서두르면 설익는 라면...
간단한 라면 하나도
제대로 만들기가 힘든데
제대로 된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
국물 하나 없는 팍팍한 삶이지만
그래도 다시 뜨끈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 한 컵 새로 부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