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니?’ 물으면 ‘그렇지, 뭐’ 할 뿐 더 이상 말이 없다 이 말만 듣고는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다 허나 우리 동네에서는 이 말만 듣고도 엊저녁 밤농사가 신통했는지 안 했는지 고추농사 재미 봤는지 비료 값 농약 값 빼고 나면 말짱 헛농사 지었는지 훤하게 안다
눈빛과 말품을 보고 안다 진짜 뜻은 애당초 말이나 글로는 다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장에 가서 농산물 팔고 오는 이에게 오늘 어땠느냐고 물어도 ‘그렇지, 뭐’ 이 한 마디 뿐 더 이상 대꾸가 없다 그러나 우리 동네에서는 다 안다 헐값에 팔았는지 유기농이라고 허풍 떨어서 바가지 씌웠는지 갈쌍갈쌍한 눈빛을 보면 다 안다
몇 년 전 외아들이 선산까지 다 팔아먹고 도망간 정미소집 늙은 홀아비는 동네 사람들이 위로하면 기러기 날아가는 하늘 한번 쳐다보며 ‘그렇지, 뭐’ 늘 이 한 마디뿐이다 옥양목 두루마기의 헐렁하게도 서늘한 소매처럼! 빨랫줄에 앉았던 잠자리가 쇠파리 잡으러 날아올랐다가 이내 고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오탁번 시인의 <그렇지 뭐>
목소리로 하는 말은 공중에서 흩어지지만
가슴으로 하는 말은 마음으로 전달이 되죠.
나를 알기 위해 마음을 열고 다가온 사람이라면
그렇지 뭐, 한마디로 대화는 충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