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백전 녹색대 가는 버스는 오십분 간격이다
버스가 떠나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일찍 차에 오르니 할머니들만 다섯 먼저 타고 계시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노친네들은 서로 거리낌이 없다
할매는 올해 나이가 몇이오
나는 아직 얼마 안 되요 칠십 서이
아직 젊구마 한참 농사 짓것네
그래도 오만 데가 아푸고 쑤시요, 할매는 얼마요
나는 칠십 아홉 저 할매하고 동갑이오
칠십 셋은 아직 괜찮소 여섯 넘기먼 영 힘에 부치요
손수레와 도리깨를 옆에 둔 할매가 칠십, 제일 젊다
중년 아낙 둘이 상자보자기를 들고 새로 탔다
저기 멋이꼬
삼이까
삼은 아닌 것 같은데, 더 무거버 뵈는데
젊은 할머니가 호기심을 참지 못한다
새댁이, 그기 멋이요
친정 엄마가 싸주는 거라요
아이고, 추석도 마이 지났는데 친정 어마씨가 꼭꼭 챙기놨구마
자식들한테 저래 싸주마 맘이 시원하재
하모요, 오목조목 싸주먼 묵을 놈이 묵으니께 주는 사람 마음 좋고
싸갖고 가먼 엄마가 주는 거니께 묵으면서 좋고 안 그러요
할매는 콩도리깨를 샀구마 올해는 콩이 질어서 타작 좀 하겠네
콩이 잘 되야재 팥 없이는 살아도 콩 없이는 못 사니께
할머니는 도리깨로 마당 가득 콩타작을 하여
둥글둥글 메주 띄워 간장 된장 청국장 단지 단지 담아서
전국 각지 오남매에게 또 오목조목 싸 부칠 것이다
묵을 놈이 묵으니께 주는 마음 시원하재
조향미 님의 <함양 군내버스>
모르는 사람과도 거리낌 없이 말동무가 되고
얼굴 본적도 없는 이의 엄마 된 마음을
정겨운 말 몇 마디로 공감해주는 넉넉함...
나이 들어 얻는 가장 큰 재산은
마음 한구석에 꽉 들어찬 이런 여유로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