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돌아와 보니,
뒷간에 기대 놓았던 대빗자루를 타고 박 덩굴이 올라갔데.
병이라는 거,
몸 안에서 하늘 쪽으로 저렇듯
덩굴손을 흔드는 게 아닐까.
생뚱맞게 그런 생각이 들데.
마루기둥에 기대어
박꽃의 시든 입술이나 바라보고 있는데,
추녀 밑으로 거미줄이 모이는 게야.
링거처럼 빗방울 떨어지는 거미줄을 보구 있자니,
병을 다스린다는 거,
저 거미줄처럼 느슨해져야 하는구나.
처마 밑에서 비를 긋는 거미처럼
때로는 푹 쉬어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데.
달포 가까이 제 할 일 놓고 있는 빗자루를,
그래 너 잘 만났다 싶어 부둥켜안은 박 덩굴처럼,
내 몸에도 새로이 핏줄이 돌지 않겠나.
문병하는 박꽃의 작은 입술을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나 깊은 잠에 들었었네그려.
비가 오니 마누라 생각이 간절해지는구먼.
부침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고 말이여.
참 자네 안사람이랑 애들은 잘 있는감.
그리고 말이여, 제수씨 밀가루 다루는 솜씨는 여전한가.
이정록 시인의 <느슨해진다는 것> 이었습니다.
매듭을 묶을 때
풀릴 게 걱정 돼 거듭해서 묶으면
나중에는 누구도 풀 수 없는 매듭이 됩니다.
느슨하게 맨 매듭이 풀기도 쉽듯
마음도 느슨하게 먹어야
걱정거리도 쉽게 풀리는 거 아닐까... 싶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