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14 (목) 다만 흘러가는 것들
저녁스케치
201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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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공원은 세상의 평등함을 보여준다
장기판 주위에 쪼그려 앉거나 둘러선 늙은이들,
그저 구경꾼이거나 훈수꾼들인 머리가 벗어져가는 중늙은이들,
유모차 끌과 와 서툰 걸음마를 익히는 아이를 지켜보는 젊은 부부,
개를 안고 나와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눈치의 젊은 아가씨들,
웃통을 아예 벗어젖힌 중년 커플,
식은 어묵 국물에 소주판을 질펀하게 벌린 아줌마 아저씨들,
한쪽에 꼬들꼬들 말라가는 김밥,
쇠리쇠리한 안경으로 의안을 감춘 비쩍 마른 할아버지,
꽉 다물어 비틀린 입술 중풍환자의 느리고 느린 산책,
여름 오후의 뜨거웠던 열기로 지친 표정이 역력한 광장 벤치들,
부근에 청춘의 하릴없음을 지겨워하는 젊디젊은 아이들

그것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저녁 하늘의 무심한 붉은 구름,
말없이 돌아가는 죽지 흰 새 몇,
그 아래 조용히 팔을 거두어들이는 잎 큰 후박나무들,
저 홀로 짙푸르러 어두워가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

엄원태 시인의 <다만 흘러가는 것들> 이었습니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엔 삼삼오오 밖으로 나와 더위를 식힙니다.
가진 이나, 없는 이나,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습니다.
온종일 집안에서 사투를 벌인 더위를 데리고 나와
그렇게 여름밤에 맞기곤 하루는 또 그렇게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