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2 (목) 사라진 것들의 목록
저녁스케치
2016.05.12
조회 586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 앞 라디오 수리점
사라지고 방범대원 딱딱이 소리
사라졌다 가로등 옆 육교 사라지고 파출소
뒷길 구멍가게 사라졌다 목화솜 타던
이불집 사라지고 서울 와서 늙은 목포댁 재봉틀 소리
사라졌다 마당 깊은 집 사라지고 가파른 언덕길도
사라졌다

돌아가는 삼각지 로터리가 사라지고 고전음악실
르네상스 사라지고 술집 석굴암이 사라졌다 귀거래다방
사라지고 동시상영관 아카데미하우스 사라졌다 문화책방
사라지고 굴레방다리 사라졌다 대한늬우스
사라지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광고도
사라졌다

사라진 것들이 왜 이리 많은지 오늘의
뒤켠으로 사라진 것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런데 왜 옛날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일까
어느 끈이 그렇게 길까 우린 언제를 위해 지금을
살고 있는지 잠시 백기를 드는 기분으로
사라진 것들을 생각하네
내가 나에게서 사라진다는 것
누구나 구멍 하나쯤 파고 산다는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큰 구멍은 없을 것이네


천양희 시인의 <사라진 것들의 목록> 였습니다.


가장 마음 아픈 건
눈에서 사라지는 것보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닐런지.
흔적 없는 것들일지라도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존재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만들고, 기억하고,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