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를 지탱해온 사과나무 뿌리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함민복 시인의 <사과를 먹으며> 였습니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내게 그냥 오는 것이 없지요.
무던히 노력한 내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가족이,
믿음을 줬던 부모가 있었기에 지금의 행복이 왔고
어렵게 손 내밀었던 나와
그 손을 잡아준 네가 있었기에
사랑이 시작됐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내게 오기 위해 거친 수많은 과정들을 생각하면
작은 것 하나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싶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