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자욱한 술집에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한참을 즐기다 나오니
아직 길도 들지 않은 새 신 종적이 없다
구멍 난 양심에게 온갖 악담을 퍼붓다가
혈색 좋은 주인 허허허 웃으며 건네는
다 해진 신 신고 문 밖으로 나오는 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찬바람,
바람에게도 화풀이를 하며 걷는데
문수 맞아 만만한 신
거짓말처럼 발에 가볍다
투덜대는 마음 읽어내고는 발이 시키는 대로
다소곳한 게 여간 신통하지 않다
그래, 생이란 본래
잠시 빌려 쓰다 제자리에 놓고 가는 것
발과 신이 따로 놀다가
서로를 맞추고서야 신발이 되듯
불운도 마음 맞추면 때로 가벼워진다
나는 새로워진 헌 신발로 스스로의 다짐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눈에 도장 꾹꾹 찍으며
대취했으나 반듯하게 집으로 간다
이재무 시인의 <신발을 잃다> 였습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항상 내 것이었던 건 없었던 거 같아요.
지금 내 손에 쥐어진 물건도
만들어지기까지는 개발자의 것이었고
돈을 주고 사오기 전까진
물건을 팔던 가게주인의 것이었죠.
어렵사리 내 손에 들어온 물건도
누가 훔쳐갔든 내가 잃어버렸든
내 것이 남의 것이 되는 건 순간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본래 잠시 빌려 쓰다 제자리에 놓고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