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라는 말은 얼마나 따뜻한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누군가 내다버린 연탄재처럼
다친 무릎에 빨간약 발라주던 무뚝뚝한
아버지처럼
골목이라는 말 속엔 기다림이 있다
벚나무 아래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어둠이 먹물처럼 번지는 시각
생 무를 깎아먹는지
창밖으로 도란도란 들리는 목소리
골목이라는 말 속엔 아이들이 있다
너무 늙어버린 골목이지만
여전히 몽환 같은 밤을 낳아
여자들은 열심히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이 쑥쑥 커서
누군가의 애인이 되어 역사를 이어가는
골목의 불멸
사소한 것들이 모여 사랑이 이루어지듯
때론 박애주의자 같은 달빛이
뒷모습까지 알몸으로 보여 주는
절망과 희망이 번갈아 다녀가는 골목
김지헌 시인의 <골목이라는 말 속엔>이었습니다.
옛 골목엔 정겨운 풍경들이 가득했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빵이 구워져 나오는 동네 빵집하며
아이들의 뚱땅거리는 연주가
골목의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던 피아노학원에
늘 평상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던 쌀집아저씨까지...
그때는 골목이란 말 속에 많은 것이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