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1 (화) 시래기 한 움큼
저녁스케치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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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식당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 사과했지만
막무가내 식당 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화해시켜보려는 경찰의 노력도
그를 신임하는 동료들이 찾아와 빌어도
식당주인은 한사코 절도죄를 주장했다
한몫 보려는 식당 주인은
그동안 시래기를 엄청 도둑맞았다며
한 달치 월급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시래기 한 움큼 합의금이 한 달치 월급이라니!
그는 야박한 인심이 미웠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
평생 주먹다짐 한 번 안 해본 산골 출신인 그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미운 인심에게
주먹을 날렸다
경찰서에 넘겨져 조서를 받던 그는
찬 유치장 바닥에 뒹굴다가 선잠에 들어
흙벽에 매달린 시래기를 보았다
늙은 어머니의 손처럼 오그라들어 부시럭거리는


공광규 시인의 <시래기 한 움큼>이었습니다.


배고픈 시절,
시골에서 아이들이 따 먹은
참외 한 두알 쯤은
도둑질이 아니라 서리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흉흉한 뉴스에 세상이 각박해졌다 느낄 때면
밥에 굶주린 사람은 있어도
정에 굶주린 사람은 없던 그때가 참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