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봄 펜팔
저녁스케치
2016.04.11
조회 582
요즘엔 손으로 쓴 편지도 드물지만
우리 젊었을 땐, ‘펜팔’이 인기였습니다.
일종의 편지 짝꿍이라고 할까요,
근데.. 여기,
해마다 3월이면 편지를 보내오는 이가 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 훨씬 전부터,
꼬박꼬박 3월이면
다정한 편지를 부쳐오는 오랜 펜팔 친구.
바로 - 봄이랍니다.
반칠환 시인의
<봄 펜팔>이라는 글을 소개해 드려볼게요.
“올해도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편지쓰기 교본」을 베낀 듯
작년과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첫 줄엔 아지랑이 모락모락 안부를 묻고,
두 번째 줄엔
호랑나비, 흰나비로 올해의 운세 물으셨죠.
눈 속 매화 한 점의 간결체로 시작된 당신의 문장은
점차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개나리의 만연체,
진달래의 우유체,
벚꽃의 화려체를 따라 읽노라면
뭇벌과 새들 소리 시끄러워 눈 감고 귀를 막기도 했지요.
저 꽃 다 지고나면
새로 받을 편지도 한결같은 초록의 문체이겠지요.“
매화의 간결체,
화르르.. 피었다 지는 벚꽃의 화려체...
연둣빛 신록 피어나는 초록체..
그러게요.
정말 <편지쓰기 교본>을 베낀 것처럼, 작년과 꼭 같은지요.
그런데.. 이상하죠.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수록,
왜 해마다 다르게 읽히는 걸까요.
시인은 말합니다.
“당신의 편지는 해마다 똑같지만
읽을 때마다 다른 것은
내가 늘 새로워지는 탓인가요,
다만 내가 늙는 까닭인가요.“
나이가 들수록,
봄 편지는 더 새롭고, 더 간절해집니다.
무엇보다 젊어서는 보지 못했던
행간 사이사이, 많은 것들이 보이죠.
생명의 찬란함,
작은 것들의 소중함,
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
그래요.
이 꽃이 다 지기 전에,
올해는 꼭 한번,
봄에게 답장을 보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