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4 (금) 어머니의 도마
저녁스케치
201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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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아버지께서 떠나시기 전 만드신
먹먹한 심정으로 푸른 날을 다 받아내고
상체에 상처를 덧대며 닳아가는 도마 하나
허기가 뚝딱뚝딱 채워지던 그 시절
순탄하던 기억들은 먼 꿈처럼 깊이 파이고
그 사이 숨어 핀 그리움 차라리 아득한데
썰어낸다고 다 잘려나가면 그게 세상인가
내리쳐도 끊이지 않아 늘 허한 마음 가득
밥 내음 붉게 퍼지면 분주해지는 저녁
어머니는 토각토각 생 무를 썰다 말고
느슨해져 삐꺽대는 도마 다리 바로 잡고서
- 바람 든 내 무릎처럼 너도 시리구나



강경화님의 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도마>



인생이란..
길이 잘 든 도마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때론 칼날 같은 세상의 모진 매질도 묵묵히 견뎌내고
후회며, 아픔들일랑, 애써 툭툭 썰어내고.
너무 아픈 것들은
종종 깊은 생채기로 남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게 견뎌낸 순간들이 있기에
도마 위에서 펼쳐지는 요리들처럼,
향기로운 삶의 변주들도 가능한 게 아닐까요.
내리쳐도 쉬 채워지지 않는 허한 마음,
어머니의 도마로 위로 받고 싶어지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