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5 (토) 봄비는 즐겁다
저녁스케치
2016.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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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봄비가 지난다
한 떼씩 마치 진군의 나팔소리 같다
샤넬 향수병을 따 놓은 병마개 같다
촉촉히 마음에 젖어드는 얼굴,
세상이 보기 싫다며 손나발을 입에 대고 불던 친구가 있었다
물구나무 서서 가랑이 사이로 세상을 건네 보던 친구가 있었다
젖지도 못하고 마른 종이처럼 구겨졌으면 어쩌나
큰길로 나서니 빨강 분홍 초록 파랑 우산 속에
소녀들의 밝은 표정이 갇혀 있다
한 떼의 봄비처럼 조잘거리며 내를 건너
숲을 건너 밀림 속으로 사라져 간다
저 가벼운 종아리들,
문득 발을 막고 제재소가 나무 켜는 톱질 소리가 들려온다 향긋하다
눈을 감는다
거대한 삼나무 숲 속살들이 톱밥으로 무너져 내린다
자꼬만 밀림 속에서 휘파람새, 휘파람새가 운다
생각이 발통이 되어 축축한 통나무들을 몰고 간다
나무 찍는 우리 나라 강릉 크낙새의 빨간 주둥이가 보인다
뚝방길 위 버드나무에 하얀 젖니를 뱉고 가는 봄비는 즐겁다
아, 들길에 서서 나는 명아주 싹이라도 세어 볼 건가
강을 건너 북상하는 한 떼의 봄비
뒷발꿈치가 다 젖는다
오늘은 강가에 나가 남풍에 실려 종종 걸음치는 한 떼의 봄비
조용한 전별식을 갖고 싶다
송수권님의 글이었습니다, <봄비는 즐겁다>
한 떼의 진군나팔처럼,
향수 한 통을 다 부어 놓은 것처럼,
찰방찰방,
시냇물을 건너는 아이들의 싱그러운 종아리처럼,
봄비가 내립니다.
봄아 봄아 어서 오너라 -
창문을 두드리는 즐거운 봄비를, 반갑게 맞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