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인정이 흐르던 골목길
저녁스케치
2016.02.01
조회 438




가끔 동시를 읽을 때가 있어요.
동심을 담은 시들을 읽다보면
우리 마음까지 말갛게 씻기는 기분.
이준관 시인의 <추운 날>이란,
이 시를 읽으면서도 그랬습니다.

“추운 날 혼자서
대문 앞에 서 있으면요,

지나가던 아저씨가
-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원,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 가거라.

지나가던 강아지가
-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대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내 마음 알지도 못하고
팽,팽,팽 돌고 싶은 팽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친구를 동동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추운 날도 아랑곳 하지 않고
팽팽팽.. 팽이가 돌 듯,
친구와 마냥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참 예쁘게 담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어른들의 참견 아닌 참견도, 기분이 좋지요?
추운 날 아이 혼자 서 있으니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저마다 한 마디 씩 거드는 모습.
우리가 잊고 살던 “골목의 풍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시절 골목엔 “인정”이 있었네요.
혼자 서 있는 아이가 ‘뉘 집 아이’인지 단박에 알고
순이 아버지 벌이가 뜸해서
순이 엄마가 맘고생을 한다는 사정들을 훤히 알고.
그래서
“이거 좀 먹어봐~ 시골에서 뭘 많이 보내셨네”
슬쩍 - 접시도 내밀고,
“순이야, 오늘은 아줌마네서 먹고 가라~”
아이의 시린 몸과 마음까지
훈훈하게 채워주던 인정이 있던 시절.
그뿐인가요.
약속하지 않아도 골목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있었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서면
누군가 정갈하게 치운 비질 자국이 곱게 나있고,
이웃 어른들께 인사를 하지 않으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던,
그래요. 그게 사람 사는 맛인데.. 말이예요.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설이네요.
오래 전 고향을 떠나왔어도
언제나 이 즈음이면 고향이 그리운 건,
아마도 그 시절, 인정이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설을 맞아 우리가 정말 떠나야 할 길,
다시 회복해야 할 길은,
따뜻한 정이 있던, 그 골목길이 아닌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