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6 (금) 흰죽
저녁스케치
2024.01.26
조회 424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때는
비싼 정찬을 먹을 때가 아니라
그냥 흰죽 한 그릇을 먹을 때

말갛게 밥물이 퍼진,
간장 한 종지 곁들여 내온
흰죽 한 그릇

늙은 어머니가 흰쌀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는
가스레인지 앞에 오래 서서
조금씩 조금씩
물을 부어 저어주고
다시 끓어오르면 물을 부어주는,
좀 더 퍼지게 할까
쌀알이 투명해졌으니 이제 그만 불을 끌까
오직 그런 생각만 하면서
죽만 내려다보며
죽만 생각하며 끓인

호로록,
숟가락 끝으로 간장을 떠 죽 위에 쓰윽,
그림을 그리며 먹는

고영민 시인의 <흰죽>


많이 아플 때만 먹을 수 있던 엄마의 말간 흰죽.
그 죽을 먹고 한숨 자고 나면 감기도 뚝,
낫지 않을 것 같은 병도 금세 나아졌었죠.

그건 죽을 쑤는 동안
나아져야지...
이것 먹고 일어나야지 하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과
절절한 사랑이 담겼기 때문일 테죠.

사는 게 아픈 날,
엄마의 흰죽이 생각나는 건 그래선가 봐요.

그 죽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을 위한 마음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