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3 (목) 구두
저녁스케치
2015.12.03
조회 472
열두 켤레의 구두가 있다
열두 갈래의 길들이 순례의 방 앞에서 멈추었다
구면인 구두들이 과묵하게 아는 척을 한다
아침부터 끌려다니던 길을 구두에게 맡기고
발은 기도 중이다
길과 발 사이
종잇장같이 위태로운 경계도 잠시 풀어지는지
구두들이 평화롭다, 쉬는 동안에도
하루 종일 품고 다니던 발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듯
발의 부피와 넓이를 고스란히 되새김질하고 있다
바람이 불면 담담한 흙먼지가 슬쩍 일어날 뿐
무관심하던 길들이
날카로운 가시나 사금파리를 감추고
부드러운 맨발을 노리고 있다는 것 구두는 안다
온몸으로 발을 싸안은 채 상처를 받아내면서
기다리는가
돌이킬 수 없는 일격!
구두가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은 없다
기도를 끝낸 열두 쌍의 발을 안고
열두 켤레의 구두가
열두 갈래의 길로 흩어진다
안이삭님의 <구두>라는 글이었습니다.
험난했던 하루를 무사히 건너오고,
이제,
우리의 저녁이 이렇게 따뜻한 것은 -
구두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헌신해준 분들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발을 벗어난 순간에도 고스란히,
발의 모양을 기억하는 구두.
그렇게 늘 우리를 품고 사는.. 고마운 헌신을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