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9 (월) 그만큼
저녁스케치
2015.11.10
조회 518
비 그치고 돌멩이 들어내자
돌멩이 생김새만 한 마른자리가 생긴다.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내 발 크기가 비어 있다.
내가 크다고 생각했는데 내 키는 다 젖었고
걸어온 자리만큼 말라가고 있다.
누가 나를 순하다 하나 그것은 거친 것들 다 젖은 후
마른 자국만 본 것이다.
후박나무 잎은 후박나무 잎만큼 젖고
양귀비꽃은 양귀비꽃만큼 젖어서 후생이 생겨난다.
여름비는 풍성하여 다 적실 것 같은데
누울 자리를 남긴다.
그것이 살아가는 자리라고
다시 살아도 꼭 그만큼은 빈다.
그 크기가 무덤보다 작아서 비에 젖어 파랗다.
더 크게 걸어도
꼭 그만큼이라는데
앞서 빠르게 걸어온 자리가
그대에게 먼저 젖는다.
문정영님의 <그만큼>이란 글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흠뻑 적실 것처럼 비가 내려도,
비어있는 자리가 있기 마련이죠.
반대로 아무리 삭막한 사막이라도
빛나는 오아시스 하나는 품고 있기 마련입니다.
살아갈 힘, 근원이라는 것..
그리 큰 데서 오는 게 아닐 겁니다.
딱 그만큼 쉬어가고,
용기내고,
기댈 자리가 있기에
우린 인생의 사막에서도,
폭풍우를 만나는 날에도,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는 거겠지요.
지친 하루 쉬어가는, 이 저녁의 고요 같은.. 이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