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 (목) 국수 먹는 저녁
저녁스케치
2015.11.26
조회 498



국수처럼 가락가락 흩어졌다 나란히 모여든 신발들,
국숫가락 앞에 놓인 순하고 가지런한 눈썹들,
눈썹처럼 돋는 웃음이 따뜻하고
면발 같은 말들이 졸깃해
목구멍이 뜨끈해 오는 저녁.
너를 떠올리는 가슴이 장국처럼 따뜻하다.
어디선가 툭 끊어진 이야기들이 통통하고 길다.
둥근 그릇에 담긴 식구들이 서로를 휘휘 젓는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이 뒤섞인다.
가지런히, 온순하게 한 사발 국수로 풀어진다.



허영둘님의 글이었습니다, <국수 먹는 저녁>




유난히 따뜻함이 그리운 날이어서 그런가요.
별다른 거 없이,
그저 멸치육수에 호박 툭툭 썰어 넣은,
엄마표 소박한 국수 한 그릇이
그리워지는 저녁입니다.
흰 연기 폴폴 나는 국수 한 그릇.
거기에 더해
둘러앉은 가족들,
쫄깃한 면발 같은 수다가 있다면..
그래요. 세상 가장 맛있는 반찬이 아닐까.. 싶어요.




--------------- 전문 >

국수는 온순하고 가지런해서
국수 먹는 저녁이 온순하고
빗소리를 듣는 귀가 가지런하다
푸르르 끓어올랐다 잦아드는 조팝꽃 향기가
테이블에 가지런하다
가락가락 흩어졌다 나란히 모여든 신발들
국숫가락 앞에 놓인 순하고 가지런한 눈썹들
눈썹처럼 돋는 웃음이 따뜻하고
면발 같은 말들이 졸깃해
목구멍이 뜨끈해 오는 저녁
너를 떠올리는 가슴이 장국처럼 따뜻하다
어디선가 툭 끊어진 이야기들이 통통하고 길다
후루룩후루룩 바람이 훌렁하고
문득 울리는 전화벨이 가지런하다
전화벨 너머의 어떤 죽음이 순하고 가지런하다
그가 벗어 놓고 간 말들이 담백하고 길다
둥근 그릇에 담긴 식구들이 서로를 휘휘 젓는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이 뒤섞인다
가지런히 온순하게 한 사발 국수로 풀어진다
순하게 빨아들이는 한 사리 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