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목) 어머니의 열쇠
저녁스케치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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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에 가려던 어머니는 잔뜩 풀이 죽었다
열쇠를 어디 두었는지 생각나지 않은 탓이다
구순이 다 되어도 눈 밝고 기억이 또렷했는데
옛집 팔아넘긴 뒤부터 갈피를 잡지 못한다

이사 가던 날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집주인이 건네준 열쇠꾸러미를 잃어버렸다고
큰언니는 다짜고짜 자식 나무라듯 윽박지르고
어머니는 젖은 눈만 끔벅거리다가 고개를 돌린다

어머니에게는 예전의 그 열쇠가 아니었으므로
열쇠가 바뀐 후 열쇠만 낯선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머니는 세상의 문을 여는 방법을 잊고
밖을 나설 때마다 허둥지둥 몸을 가누지 못한다

현관 옆에 못을 박아 열쇠꾸러미를 걸어둔다
어머니는 여전히 옛집의 기억을 버리지 못하고
문 앞에만 서면 버릇처럼 더듬거릴 것이므로
신발을 신다가 문득 열쇠를 발견할 것이므로


이세영님의 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열쇠>




아마도.. 어머니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정말이지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무섭게 변해가는 지요.
우리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한데,
시대는 자꾸 그 생생한 기억을 ‘구식’이라 말하고,
첨단이란 것들은 영 낯설어서, 종종 길을 잃곤 하는 걸요.
언제 쯤 새 집, 새 열쇠에 익숙해질까..
가끔은 새로운 길들이 참 아득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