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음악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저녁스케치
2015.10.11
조회 576


요즘 영화 <인턴>이 화젭니다.
일흔 살의 시니어 인턴과
서른 살의 여성 CEO라는 독특한 설정 외에,
그 흔한 특수효과도, 달달한 로맨스조차 없는 이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이 영화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주로 남자답고 강한 역할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가
이번에는 온화한 미소에,
일흔 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수트빨’이 살아있는
지혜로운 노신사 벤으로 분하는데요
그는 절대, 젊은이들에게 섣불리 충고하거나 제안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저 잘 지켜보고 있다가
적재적소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나 따뜻한 위로를 전하지요.
줄스가 속상해서 울먹일 때
“손수건은 상대에게 빌려주기 위한 거랍니다”라며,
슬쩍.. 내미는 손수건처럼 말이죠.

꾸준히, 그러나 요란하지 않게
상대방까지 어른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진짜 어른인 벤.
그렇게 벤을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그려낸 데는,
벤과 비슷한 연배인 로버트 드니로의 멋진 연기,
그리고 스크린 밖,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공이 큽니다.
올해 예순 여섯인, 노련한 여성 감독인 낸시 마이어스.
이번에도 그녀는, 특유의 따뜻한 인간애와 유머로,
“나이듦”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하게 만들지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낸시 마이어스처럼,
최근에 많은 화제를 낳은 헐리웃의 영화들이,
모두 6,70대의 노감독들의 작품이란 점도 흥미롭습니다.
화성에서의 인류 생존기라는,
독특한 우주 서사를 담은 영화 <마션>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은 무려 일흔 일곱 살.
뛰어난 상상력, 독립적인 여성을 그려내 호평을 받은
<매드맥스>의 조지 밀러 감독도 일흔 살이지요.

이들, 노감독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열정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풍부한 연륜이야말로,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진정한 원동력이라고.
무엇보다 인생에는 결코, 은퇴가 없는 거라고.
"뮤지션에겐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멈추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 있어요."
라고 말하는 벤처럼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