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 (수) 풍경을 빌리다
저녁스케치
201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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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아름다운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그냥 살던 집 벽을 헐고 창을 내어
풍경을 빌려서 살기로 했다
오래된 시멘트벽이었다

쇠망치로 벽을 치자 손목과 팔이 저려왔다
한번 더 힘껏 치자 어깨와 가슴까지 저려왔다
쇠망치를 튕겨내는 벽
반항하는 벽 대신에 서까래와 대들보만 울었다

"벽은 안에서 밖으로 치는 것이여!"
지나가던 노인이 혀를 끌끌 찼다
방 안에 들어가 밖으로 벽을 치자
망치 두세 방에 벽이 뻥 뚫렸다
하늘이 방 안으로 무너지고 햇살이 쏟아졌다

터진 벽에 창틀을 끼우고 유리를 붙이자
창문으로 감나무와 버즘나무와 잣나무 숲이 선착순으로 들어오고
잣나무숲 뒤로 마을과 멀리 바위를 등에 업은 산맥이 들어왔다
산 중턱에 요란한 절과 반짝이는 교회 첨탑이 옥에 티지만
가끔 빗줄기와 눈발이 발을 쳐서 가려주었다

이 땅에 경치 좋고 인심 좋은 명당이 흔하겠는가
이게 인생 아니겠나
마음이 명당이면 되는 것 아니겠나

창을 낸 후 방 안은 매일매일이 유리 스크린 영화관이다
오늘은 직박구리 두 마리가
가지에 매달린 언 감을 쪼아 먹는 모습이 다정하다
러브씬도 은근히 기대해본다


공광규 시인의 글이었습니다, <풍경을 빌리다>



풍경을 빌린다는 말.. 참 좋지 않나요?
왜 세상의 많은 것들을,
꼭 나만 봐야하고
내 소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요.
빌려와도 이렇게 좋은 걸.
빌려온 풍경 속에, 나도 슬며시..끼어들어 봅니다.
그렇게 중심이 아닌
풍경의 일부가 되어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