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저무는 향기마저 아름다운
저녁스케치
2015.08.24
조회 518

길을 가는데요
어디서 풀을 베었는지요,
공기 중에 풀향기가 가득 베어 밀려옵니다.
아.. 얼마나 싱그럽고 향기롭던 지요.
아마도 올 여름, 마지막으로 베는 풀이 될 텐데..
여름 내 무성하던 들풀들도,
이제 저물어가겠지요.

풀향기를 맡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름도, 존재도 없이 피었다 지는 저 풀들도,
저물 때는 저리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는데..
아니, 나를 베어내는 손길,
베어진 상처마저 저리 싱그러운 향기를 남기는데...
나는 어떤 향기를 남기며 살았을까.
원망과 후회 대신,
저물어 가는 내 나이만큼,
더해진 상처의 자리들에,
풋풋한 풀향기 배인,
그런 사람이면 좋겠는데.. 말예요.

풀향기 베인 사람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풀꽃들과 친해지는 거라고, 시인들은 말합니다.
“여기 풀꽃밭에 앉아
한나절이라도 아무 말 말고
풀꽃을 들여다보라“고,
“애인 같이 작고 부드러운 풀꽃의 표정“을 보다보면
우리 마음까지, 풀꽃을 닮아 맑아진다고.
이성선 시인은 노래하지요.
이해인 수녀님도
<풀꽃의 노래>란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 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올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꼭, 들판에 머물러봐야겠어요.
그렇게..
그 고운 얼굴에 눈맞추며,
묵묵히 들판을 채우며
안으로 씨앗을 영그는,
낮은 마음들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무는 향기마저 아름다운, 풀꽃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