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0 (월) 앙숙
저녁스케치
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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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부님은
마당가에 꽃 키우는 것 못마땅헸다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있으면 콩이나 채소를 가꾸었다

어느 작가는
마당에 풀이 우북해도 절대 뽑지 않았다
쇠무릎 이질풀 삼백초 질경이까지 다 약으로 썼다

한 사람은 어려서 배가 고팠고
한 사람은 어려서 몸이 아팠다
둘은 평생 친구였다

그들과 친했던 어느 농민 운동가는
집을 자주 비우다 가끔 집에 돌아가면
아내가 가꾼 꽃밭 갈아엎어 텃밭 만들곤 했다
아내는 남편이 집을 비우면
기다렸다는 듯이 텃밭 갈아엎어 꽃밭 가꾸곤 했다

텃밭과 꽃밭의 숨바꼭질
아내가 남편을 잃고서야 끝이 났다
아내는 꽃밭에서 아주 살았다

한 사람은 농사를 사랑해서 채소를 길렀던 것이고
한 사람은 남편이 그리워서 꽃을 가꾸었던 것이다



안상학님의 글이었어요. <앙숙>




꽃들도 제각각이듯,
마당을 가꾸는 이유도 제각각이네요.
꽃들이 서로 어우러지듯
앙숙처럼 투닥이면서도 어우러져 사는 재미.
그래요. 어디 작은 마당 안 뿐이겠어요.
이렇듯 정겨운 앙숙들이 있어
세상사는 맛도 더해지는 거 -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