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여름, 담백한 맛이 필요한 때
저녁스케치
2015.06.15
조회 478
어느 날 티비를 켭니다.
그런데 화면에는 아무 설명 없이,
그저 기차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이 스쳐지나가는 거예요.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나고, 마을을 지나고...
이 심심하기 짝이 없는 방송은 무려,
일곱 시간이나 계속 됩니다.
이뿐이 아니예요.
열 여덟 시간의 연어 낚시, 열 네 시간의 새 관찰,
아홉 시간 계속 되는 뜨개질 같은 장면들도 선을 보이는데요
근데.. 신기하죠.
이 심심한 방송에 사람들이 열광을 하기 시작합니다.
노르웨이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끈, <슬로우 티비> 이야깁니다.
빠르게 채워지는 자막들,
화려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그래픽 장치들,
때론 진실마저 왜곡하는 편집기술 같이.
슬로우 티비의 도전은 역으로
우리가 평소,
얼마나 많은 자극에 길들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지요.
그리고 강한 맛은 쉽게 끌리지만 쉽게 질려버리듯,
우리 삶에 진정 필요한 건, 담백한 쉼이라는 것도 말이죠.
여름은,
힘을 더하는 계절이 아니라, 힘을 빼는 계절이지요.
여름엔 정갈한 콩국수 한그릇 같이,
담백한 음식이 어울리는 것처럼,
여름은 우리 몸에 베인 바쁨과 빠름,
이런저런 자극들을 덜어내고 가는 계절이 아닌가.. 싶어요.
유월의 숲을 천천히 걸어본 게.. 언제신가요?
나비가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풍경을 오래도록 지켜보거나,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수평선을 바라본 적은요?
아니, 마지막으로 카페에 느긋하게 앉아
커피를 마신 적은.. 언제신가요?
여름엔... 한 박자 쉬어가 보세요.
삶의 걸음을 좀 늦춰보세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일상의 즐거움과 재미가, 꽤 많이 보일 겁니다.
그렇게 심심한 듯,
담백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름에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