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 (화)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저녁스케치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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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함민복 시인의 글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슬픔으로 배가 부른 그런 날들..
눈물 젖은 밥의 의미가 뭔지,
몸으로 실감하는 그런 날들이,
살다보면... 있지요.
하지만 또 그렇게,
슬픔으로 배부른 날 속에서..
따뜻한 인정을 봅니다.
가녀리지만 꺼지지 않는, 희망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