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6 (금)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저녁스케치
2015.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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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들빼기는 씨가 잔게 흙에다 섞어 뿌리고
도라지는 잔설 있을 때 심거야 썩지 않는다네
진안장 귀퉁이 주재순 할매의 씨앗가게
콩씨 상추씨 아주까리씨며 참깨씨랑
요모조모 다 있는 씨오쟁이마다 쌔근거리는 씨들
요렇게 햇볕 좋고 날 따수어야 싹이 튼다네
흙이 보슬보슬해져야 간지럼도 태우고
보슬비도 와서 촉촉해져야 쑥쑥 자란다네
세상에 저 혼자 나오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다 씨가 있어야 나온다는 할매 말에
금세 수숫잎이 일렁이고 해바라기가 돌고
배추가 깍짓동만 해지고 참깨가 은종을 울리는
장터, 이제 스스로는 무얼 더 생산할 수도 없이
유복자가 해준 틀니에 등은 온통 굽었는데
나는 작은 게 좋아요, 씨앗들이 다 작잖아,
요것 한 줌이면 식구들 배불리 먹인다는 할매는
길 걸을 때면 발길 닿는 데마다 씨오쟁이를 열어
갓씨 고추씨 오이씨 죄다 뿌린다네
할매에겐 땅 한 뼘 없어도 걸어댕겨 보면
천지에 온통 오목조목 씨뿌릴 땅이어서
어느 누가 거두어 가든 상관 않고 뿌린다네
누가 됐든 흡족하게 묵으면 월매나 좋겄냐고.



고재종님의 글이었습니다,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당신에겐 땅 한 뼘 없어도
누가 됐든 배부르면 됐다며 -
부지런히 씨앗을 뿌리는 할머니.
마음의 평수만은 그 누구보다 넓은 분이 분명하지요.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듯이
봄에는 부지런히,
삶의 좋은 씨앗들을 뿌리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