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금)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저녁스케치
201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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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먼 들이 가까워진다
놀이 만지다 두고 간 산과 나무들을
내가 대신 만지면
추억이 종잇장 찢는 소리를 내며 달려온다

겹겹 기운 마음들을 어둠 속에 내려놓고
풀잎으로 얽은 초옥에 혼자 잠들면
발끝에 스미는 저녁의 체온이 따뜻하다

오랫동안 나는 보이는 것만 사랑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도
사랑해야 하리라

내 등 뒤로 사라진 어제,
나 몰래 피었다 진 들꽃
한 번도 이름 불러보지 못한 사람의 이름
눈 속에 묻힌 씀바귀
겨울 들판에 남아 있는 철새들의 영혼
오래 만지다 둔 낫지 않은 병,
추억은 어제로의 망명이다

생을 벗어버린 벌레들이
고치 속으로 들어간다
너무 가벼워서 가지조차 흔들리지 않는 집

그렇게 생각하니 내 생이 아려온다

짓밟혀서도 다시 움을 밀어 올리는 풀잎
침묵의 들판 끝에서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이기철님의 글이었어요, <추억은 혼자 분주하다>



일년 열두달 꽉 차 있던 한 해가,
이제 거의 다 사라져가지요.
화사하게 피었던 꽃도, 탐스럽던 열매도 사라지고
마지막 잎새마저 떨구며 계절도 비워져 갑니다.
그렇게
한해가, 계절이 떠나간 자리 - 추억은 홀로 분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