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옹기종기 모닥불
저녁스케치
2014.12.09
조회 515


늦은 저녁 길을 가다보면
공사장 인근이라든가, 불을 피워놓은 걸 볼 수 있지요.
그러고 보면 불이라는 거..
특히 여럿이 둘러앉은 모닥불이란 건,
단순히 추위를 이기는 것, 이상의 힘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결이 순해지고
어딘가 빗장 하나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랄까요.
어쩐지 숨겨두었던 비밀 한 자락 내비쳐도 좋을 거 같구.
외롭고 슬픈 마음도 툭, 터 놓을 수 있을 거 같고.
모르는 사람과도 선뜻,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불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힘이 있습니다.
낮동안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홀로 외로이 사막의 모래폭풍을 건넌 사람들도,
밤이면 오아시스의 불 밝힌 모닥불 주위에 모여들듯이,
도시의 유목민들은
저 멀리 따뜻한 불빛들을 바라보며
돌아갈 내 집을, 둘러앉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둘러앉은 자리는,
종종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요.
인류학자인 폴리 박사는 부시맨 종족을 관찰했는데요
낮 동안에 모이면 사람들은 대부분
토지 문제라든가, 다른 사람에 대한 불만 같이,
현실적인 얘기들을 했지만
모닥불을 피운 밤이면 전혀 다른 이야기들을 하더래요.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미지의 부족들을 상상하기도 하고,
때론 연장자가 들려주는
부족의 오랜 신화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우리에게도 비슷한 추억이 있지요.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가
그토록 재밌었던 것도,
"또 ~ 또 해 줘~"하며 조르던 것도,
알밤이 익어가던 화롯불가 곁이었기 때문 아닐까..

그래요.
만약 불이 없었다면
그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내일을 기약할 용기도,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힘도,
지금보다 훨씬 적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매섭게 추운 이 밤 -
조용히 불을 밝히고 싶습니다.
그 따뜻한 온기에
고단한 하루를 뉘이고
서로의 따뜻한 어깨가 되어주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며.. 겨울밤이 깊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