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귀를 접다
저녁스케치
2014.11.17
조회 702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날 때가 있죠.
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읽고 싶을 때도 있구요.
그럴 땐 보통, 책의 모퉁이를 살짝 접어두곤 하는데요,
그래요.
책의 귀를 접는다는 것.
그건 곧, 책과 나만이 아는, 설레는 약속 같은 걸 거예요.
“다음에 꼭 다시 한번 만나자”..라든가,
“잠시 후에 만나!”..같은.

강기원 시인은 <귀를 접다>란 시에서
책과의 약속을 이렇게 말합니다.

“말없이 나를 읽어주던 귀.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려버리지 않는 귀.
꿈과 상징으로 가득한 귀 -
손가락을 거는 대신
나는 책의 귀를 가만히 접는다.
잠시 후에 다시 만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과의 약속은, 자주 잊혀지곤 합니다.
“잠시 후에 만나!”자며 귀를 접어놨건만,
바쁜 일상에 치여 오래 밀어두기도 하고.
꼭 하번 다시 보고 싶던 감동의 구절들도
영영 접힌 채,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 멀어져가지요.

이제.. 책장 앞에 서서
모서리 여기저기 접힌,
한 때 무척이나 사랑했던 오랜 책들을 꺼내봅니다.
그리고 “꼭 한번 만나자”며,
모서리만 열심히 접어놓은 채 잊고 살았던,
수많은 약속들을, 그리운 얼굴들을 생각해봅니다.
소중한 것들은 왜 늘, 이렇게 쉽게 잊혀지는지요.

한해를 마무리하는 11월도,
어느새 중반으로 돌아섰어요.
더 늦기 전에,
책이든, 사람이든, 접었던 모서리들을 펼쳐주세요.
그리고
한 때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따뜻하게 물들여준
그 소중한 구절들과,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들과 마주해보시길..
분명,
“왜 이렇게 늦었어?”
환한 웃음으로 반기며,
더 많은 얘기들을 들려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