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토) 밑줄
저녁스케치
2014.10.26
조회 574



내 생애 어느 곳에 밑줄 하나 그어볼까
더듬어 본다
옛집으로 거슬러 올라 부엌과
젖은 연기가 맵던 아궁이의 외양간을 떠올린다
음매하고 길게 세월을 붙잡던 송아지를 생각한다
뒤란으로 돌아가 앵두나무 가지를 잡아당긴다
숨어있던 참새들이 우루루 쏟아져내린다
여기는 밑줄을 그을 대목이 아니라고 중얼거리며
앞개울로 나가는 길섶에서
민들레를 눈으로만 어루만진다 촉촉하다
아침부터 짓밟힌 질경이의 항의를
못들은 체 모른 체하며
시선은 하얀 뭉게구름에 폭 파묻힌다
포근하다 폭신하다
어머니 품속에서 꿈을 꾸는 듯 행복한 그 순간
이 대목에 밑줄 하나 그어볼까 생각하다가
금년 아흔넷인 어머니의 굽은 등에 시선이 잠긴다
한 평생 희생으로 사신 어머니
어머니 등에 밑줄 하나 그어 쫙 펴드리고 싶다



서효찬님의 <밑줄>이란 글이었습니다.



책을 읽다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듯이,
살면서도 가끔, 밑줄을 긋고 싶은 순간들이 있지요.
아름다운 계절, 가을도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시월이 다 가기 전에 밑줄 한번 그어 보시죠.
그렇게 꼭,꼭 눌러 -
오래도록 남을 추억 하나, 남겨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