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 (화) 볍씨 말리는 길
저녁스케치
20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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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을 나섰습니다.
검은 아스팔트 위에 노랗게 펴 말린 볍씨들이
가지런합니다.
햇살에선 오래된 볏집 냄새가 풍기고
마을은 이제 편하게 쉬고 있습니다.
참 오랜만의 휴식입니다.
이런 날은 길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발소리를 죽이며 걷는 이 길,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선 볍씨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누런 볍씨 속에 들어 있는 흰쌀, 영혼들,
나는 문득 저 길의 끝, 일년 내내 못물이 발목을 적시며
준비한 정갈한 저녁 밥상을 떠올립니다.
텅 빈 무논 한가운데
흰 백로가 허리를 구부려
마음 자락에 떨어진 이삭 하나를 줍습니다.
이 역시 소담하게 차려진 한 그릇의 쌀밥입니다.
그림자를 길게 펼쳐놓고
풀풀한 햇살 한 줄기가 볍씨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어루만집니다.
나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 널어놓은 볍씨를
가래로 몰아 챙깁니다.
곧 이슬이 내릴 시간,
볍씨들은 노란껍질을 여미고 하루종일 데운 제 몸으로
저녁의 입구를 향해 걸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대숲을 향해 새 떼의 고삐를 쥐고 가는
노곤한 서녘 하늘은 텅 비어 어둡고
이슥토록 노을 한 자락은 허기진 산을 채 넘지 못해,
너머엔 아직 길이 환합니다
고영민님의 글이었어요, <볍씨 말리는 길>
봄부터 부산하던 논도 이제 텅 비어 가고,
대신 황금빛 볍씨를 말리는 풍경이 많아지는 요즘이지요.
농부들에겐 참, 얼마 만에 휴식일런지요.
일년 내내 못물에 발목 적시며 마련한
정갈한 저녁 밥상 -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드는, 저녁입니다.